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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소한 행운 - 고바야시 사토미가 전하는 담백하고 유쾌한 에세이
    Book 2022. 2. 2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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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모메 식당'의 고바야시 사토미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주인공 사치에는 언어도 문화도 확연히 다른 핀란드 헬싱키라는 낯선 곳에서 식당을 오픈한다. 쿠킹 스튜디오 느낌이 물씬 풍기는 단아하고 심플한 식당에서 현지 식재료를 가지고 본인만의 레시피를 선보인다.

    그러한 그녀의 노력은 핀란드로 여행 온 마사코와 미도리뿐 아니라 식당을 오가는 핀란드인들의 입맛과 시간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 사치에를 연기한 고바야시 사토미는 ‘사소한 행운 - 여배우가 삼재를 건너는 법’이라는 다소 재미있는 제목의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힐링을 선사해 주고 있다.

    실제 이 책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그녀가 삼재를 맞은 해부터 연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배우로서, 여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담담하고 유쾌하게 하루하루를 써 내려갔다.

     

    하지만 그렇게 언제나 뇌를 행복한 상태로 두는 기술이야말로, 무엇보다 수행이 필요한 재주는 아닐까? 아침에 눈을 뜬 시점에 애초부터 멍하게 상태가 안 좋은 날도 있고, 행복한 기분으로 걷다가 구멍에 발이 걸려서 나뒹굴고 마는 날도 있을 테니까. 그래도 그런 때조차 ‘아얏! 넘어졌지만 겨우 무릎만 깨졌네. 아, 다행이야!’ 하고 생각하라는 건가? 대단하다.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p79)

    고바야시 사토미가 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알게 되었다. ‘사소한 행운’을 읽고 나니 그녀의 다른 책들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만의 에세이를 쓴다면 그녀의 필력을 닮은 담백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상반되는 면에 대해 깊이 파고들자면 어쩐지 정신분석의 세계로 넘어가버릴 듯해 두렵지만, 나는 결별한 과거의 기억 속 단면들을 옛 영화와 음악 속에서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과정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 정도의 센티멘털이 내 안에서 허용하는 범위다. (p84)

    이 책을 읽는 내내 정말 작가가 삼재를 맞은 3년간 쓴 에피소드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유쾌하고 즐거웠다. 간결하고 심플한 문체로 은근히 유머러스한 일상을 전하면서 동시에 부드럽게 울림을 주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흔히 있을 법한, 누구나 겪을 반복적인 일상에서 고바야시 사토미 그녀가 소재를 고르는 안목과 거기에서 나오는 자기 성찰에 대한 탁월함이 돋보이는 책이라는 생각이 읽는 내내 계속되었다.

    하지만 연극은! 아, 뭐 사실 지금 맡은 역할도 집까지 끌고 들어가기는 좀 그렇지만, 준비 시간이 긴 만큼(연습 기간은 약 한 달 정도) 미션, 숙제, 좌절, 반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그 역할과 나눈 이야기가 깊어지고 깊어지는 작업인 것이다. (p129)

    고바야시 사토미는 그동안의 대표작들에서 잔잔하게 나이 먹는 법을 알려 주거나 자연스러운 관계를 만드는 법을 알려 주는 등 비교적 여백이 짙은 공간과도 같은 이미지였다. 이 책 역시 그녀의 이미지를 은은하게 드러내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요즘 흔히 말하는 일상으로의 회복은 결코 과한 곳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과 가까운 나의 사람들 그리고 내가 애정을 갖는 모든 것들을 세심하게 살펴볼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그녀의 이 책을 통해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살 때는 “이거 예쁘잖아!” “아니, 이렇게 편리한 게 다 있었어?” 하고 감탄하며 나름대로 순간적인 판단력을 발휘한다지만, 그걸 처박아뒀다가 나중에 처분할 때는 몇 배나 되는 정신노동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p91)

     

    이 책이 가진 매력은 고바야시 사토미가 자신의 개인 생활과 촬영장에서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공개하는 데에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누구나 고민할 만한 속 깊은 소재를 함께 공감하듯 풀어쓴 데에 있다.

    삼재를 지나는 중일지라도 평범한 삶이 주는 안도감에 대한 감사와 지적인 생활을 추구한다는 고바야시 사토미만의 존재감이 책 곳곳에 녹아들어있었다.

    세상이 입을 모아 날마다 축 늘어져 있으니까 여유가 생기는 거다, 다시 말해 게으름을 피우는 거다, 또는 그저 속 편히 지내는 거다, 그런 말을 늘어놓으면서 마치 매일 심각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음 편하게 있으면, 좋지 않은가. (p219 내가 기운이 넘치는 이유 중에서)

    고바야시 사토미만의 위트가 돋보이는 이 책은 일상이 무료하고 작은 의미가 무엇인지 느끼고 싶은 이들을 위한 성찰에 가깝다. 영화 ‘카모메 식당’이나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에서 고바야시 사토미가 보여준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나와 나의 생활, 관계를 다시 돌아보기에 좋은 책이다. 무료한 하루에 그녀의 위트 한 스푼 더해 보기를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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