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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화미각>, 역사와 문화로 맛보는 중국 미식 가이드
    Book 2022. 3. 1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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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중국집들은 친근하게 느껴진다. 중국요리집이라 불러야 하지만 중국집이라 부르고 싶고 그래야 친근함이 유지되는 것 같다. 무심코 지나치다가도 코 끝을 스치는 달큰한 춘장 향이나 달궈진 기름 냄새가 나면 간판이라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중국요리의 수는 세상의 어머니 수보다 많다'라는 말이 있다. 평생 죽을 때까지 다 먹어보지 못하는 게 중국요리라고도 할 정도로 가짓수와 종류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거기에 오랜 역사와 문학에 서린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중국 소설 연구자들이 세운 한국 중국 소설학회에서 활동하는 열아홉 명의 인문학자들이 쓴 책이다. 저자 대부분이 현직 주요 대학교의 중어 중문, 국제어학, 중국학, 중국어 통번역학 교수님들이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와 문학 속의 음식 이야기를 더욱 깊게 풀어내고 있다.

     

    강소 요리 중에서도 소주 지역 요리는 간장의 향미 중 단맛을 최대로 이끌어내는 특징을 지닌다. 간장은 짠맛을 기본으로 하지만 단맛, 감칠맛까지 아우른다. 간장 자체의 맛이 소주 납육, 즉 오향장육의 수준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19

     

    천천히 젓가락을 들고 이 아름다운 고기를 한입 먹으면 기름기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달콤하고 담백하며 부드러운 삼박자의 조화를 이룬 맛이 또 한번 당신을 미소 짓게 만들 것이다.
    P.58

     

     

    중국요리에 대해 꼭 다루어야 하는 종류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전채, 주요리, 식사류, 탕, 후식, 음료, 간식, 연회 차림표를 중심으로 북경오리, 동파육, 훠거와 같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요리부터 장원병, 광동당수, 용정차처럼 생소하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아이템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이 책의 매력은 단순하게 요리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역사와 요리에 빠져서는 안 될 식재료와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풀어내고 있어 알찬 음식 인문서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식재료에도 관심이 많은 터라 책을 잡고 있는 내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추운 겨울날의 회는 더 인기가 좋았다. 시대를 훌쩍 넘어 당나라 때로 가보자. 현실의 참상뿐 아니라 소소한 일상도 자주 노래한 두보는 '문향의 강소부가 회를 대접하여 재미삼아 긴 노래를 드리다'라는 시를 남겼다.
    P.78

     

    소동파는 "푸른 기름에 지져내니 야들야들 진한 황색"이라고 호떡을 노래했으며, 청나라 포송령은 '전병부'라는 작품에서 기름에 지진 호떡을 "달처럼 둥근 모양, 종잇장처럼 얄팍하며, 누런 학의 깃털 같은 색깔"이라고 읊었다.
    P.141

     

    냉면처럼 추운 겨울에 더 별미였다는 회와 호떡에 대한 고서의 내용과 작가들의 묘사가 입가에 달달한 맛을 가져다준다. 요즘 쉽게 먹을 수 있는 이러한 음식들이 꽤 오랜 기간 문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음식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진이 아닐까 싶다. 톤 앤 매너를 잘 지킨 세팅에 자연광을 담은 음식 사진은 언제 봐도 탐스럽다. 이 책 역시 매 주제별 음식마다 먹음직스럽게 찍은 사진을 수록했다.

    서안 회족 거리 음식인 호떡, 중국 남방 민족의 절기 음식 오색 꽃 찰밥에 쓰이는 곱게 물들인 쌀, 솬양러우, 훠거 등 쉽게 접하기 힘든 귀한 자료들이 담겨 있어 의미가 더 크다.

     

     

     

    돼지고기를 먹기 좋도록 네모나게 썰어 냄비에 담은 뒤 물을 조금만 붓고 불에 올린 다음 간장, 설탕, 생강 등을 넣고 몇 시간 동안 뭉근하게 조린다.
    P.58

     

    동파육 레시피이다. 인문학서라 해서 역사와 문학만을 다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한국인들도 사랑하는 다양한 중국요리의 조리법도 가득 담겨있어 지금 당장 먹고 싶어진다.

    레시피에는 갖가지 스토리도 곁들여져 있어 풍미를 더한다. 다른 사람들과 중식이나 이 책에 수록된 음식을 먹게 될 때 숨겨져 있던 절절한 스토리도 함께 나눈다면 그 또한 멋지지 않을까.

     

    영화 '화양연화'에서 주모운은 비를 맞고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데, 소려진은 그가 흑임자죽이 먹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자, 평상시에는 주방에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그를 위해 큰 냄비 가득 흑임자죽을 끓여낸다. 당수는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걸쳐 있는 보이지 않는 애정이고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다.
    P.246

     

    중국에서는 지금도 생일이 되면 복숭아 모양 케이크를 사다 먹고 복숭아 모양 찐빵을 만들어 먹는 풍경이 익숙하다. 중국인들에게 복숭아, 혹은 복숭아를 본뜬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중국인이 대대로 그려오던 유토피아적인 기억을 반복하는 행복한 경험이며, 신화적 시간을 재현하는 주술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P.256

     

     

    맛은 다채롭다. 요리의 가짓수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각자가 느끼는 음식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무궁무진할 것이고, 매일 먹는 음식이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갖는 힘이 가장 잘 발현되는 것이 음식, 문학, 역사일 텐데 이 책이 역사와 문화로 맛보는 중국 미식 가이드답게 맛깔나게 풀어내었다.

    오랜 시간 연구해 온 인문학자들이 철저한 고증을 거쳐 맛있는 식탁과 이야기를 선사하는 책이다. 평소 음식에 대한 정갈한 인문학 한 권을 만나고 싶었던 이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서태후는 섬서 서안으로 도망하는데, 피난 도중 어느 국숫집에서 새어나오는 음식의 향기에 사로잡힌다. 그것이 바로 짜장면이다. 그 맛에 매료된 서태후는 나중에 그 요리사를 데리고 환궁한다.
    P.172

     

    이 책을 읽고 나니 오늘 오랜만에 감칠맛 나는 짜장면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해 볼까 싶다. 서태후가 매료되었다는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어릴 적 먹었던 짜장면 맛을 떠올리며 맛있게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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